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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도시에 관한 기사를 홀로 준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약간의 도움이라도 요청할 수 있는 관광청이 없는 경우에는 더더욱. 기자로 일하던 시절, 런던을 소개하는 기사를 준비하라는 요청을 받고 설렘과 동시에 조금은 막막해졌었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당시 런던을 담당하는 한국 지사 관광청이 없었고, 영국 본청으로 요청을 해 봤자 답을 받기도 힘들다는 슬픈 소식까지 들렸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모두가 한 번쯤 가 보고 싶어 하는 도시니까. 한데 그렇다는 건? 1부터 무한대까지 모든 출장 준비는 온전히 나의 몫이란 것고려아연 주식
이다.
이걸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우선 도시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해당 도시에서 어떤 주제를 다룰지 정한 후, 주제별로 취재할 만한 장소는 어디일지 탐색해야 하며, 숙소와 식비를 충당할 수 있는 범위는 어느 정도인지 계산한다. 그리고 이러한 범주 내의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졌다면 본격적인 취재지를 섭외하고, 이동 동선을 고려한 스케줄을 짜야펀드
하며, 그에 맞춰 현장에서 모든 것을 제때 소화해 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그때의 내가 이걸 다 어떻게 해냈는지 신기할 뿐이다(이게 다 10년쯤 전의 이야기라니, 아이고 세월아).



이 모든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건 취재를 원했던 다양한 곳들과 소통하느라 백통아너스tv
이 넘는 이메일이 오갔고, 시차로 인해 새벽 2시에도 답장을 보내고 있었으며, 연락이 닿지 않았던 취재지의 섭외가 런던 도착 후 극적으로 성사되어 말 그대로 펄쩍 뛰며 기뻐했던 일 같은 것들이다. 모든 고생은 시간이란 필터를 덧씌워 추억으로 남는다는 걸 실감한다.
다채로운 감정을 안겨 준 런던 출장에서 내가 느낀 흥미로운 점은 이 도시가 야마토2
지닌 양극단의 미감이었다. 클래식의 정수가 무언지 보여 주는가 하면, 진짜 개성은 이런 거라고 소리치는 것 같은 곳들이 존재했다(실제 기사의 방향도 두 갈래를 모두 보여 주는 방향으로 진행했었다). 무엇보다도 이스트 런던의 쇼디치(Shoreditch) 일대는 당시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런던에서 가장 힙한 동네라고 해서 취재하기로 맘을스카이톡
먹은 곳이었는데, 기대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모니터를 통해서만 보던 뱅크시의 작품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건 물론, 각자의 매력으로 무장한 상점들과 갤러리, 빈티지 마켓, 거기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기 취향을 드러내는 개성 넘치는 사람들까지! 도시에 처음 발을 들인 시골 쥐처럼 두리번거리며 모든 장면을 기억 속에 남기고 싶었고, 사진도 많이 찍어 댔다. 그냥 또 반해 버린 거지 뭐.



그렇게 이스트 런던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다 초록빛 타일이 시선을 사로잡는 '레이버 앤 웨잇(Labour and Wait)'을 발견했다. 이스트 런던 마켓 디스트릭트 중앙부에 위치한 이곳은 일상에서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클래식한 제품을 선보이는 편집숍이다. 어찌나 고심해 선별해서 물건들을 들여놓았는지, 보는 족족 사고 싶은 것들뿐이었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운명적으로 들르게 된 김에 '메이드 인 런던'을 상기시켜 줄 무언가를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샛노란 표지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혹스톤 미니 프레스(Hoxton Mini Press)'라는 독립출판사에서 출간한 가이드북이다. 혹스톤 미니 프레스는 주로 이스트 런던의 로컬 문화를 테마로 한 사진집과 가이드북을 출판하던 곳이고, 이제는 이스트 런던을 넘어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그렇지만 여전히,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거칠고 매혹적인 이스트 런던만의 감성을 찾아다니며 그 아름다움을 조명하고 있다. 이 출판사에 대한 모든 배경지식을 알기 전부터도 나는 심플하게 '이스트 런던'이란 글자만을 표지에 새겨 넣은 기세에 마음을 빼앗겼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구매를 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아직도 판매하고 있는지 살펴보니, 어느덧 세 번째 에디션을 판매 중이다. 표지의 배경과 폰트 컬러도 바뀌었다. 혹시나 싶어 내가 가진 책의 맨 뒷장을 확인해보니 첫 번째 에디션, 첫 번째 프린팅이 적혀 있다. 으하하 이렇게 뿌듯할 수가! 언젠가 기회가 닿아 이스트 런던을 다시 취재하게 된다면 혹스턴 미니 프레스를 섭외해 인터뷰하고, 이 책에 출판사 대표의 사인을 받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이걸 갖고 있느냐고 놀라는 장면을 마주하는 상상을 해 본다.
*김나영 작가의 맥시멀리스트 여행 여행이 일의 한 부분이던 시절, 다채로운 도시들을 탐험하며 부지런히 작은 물건들을 사 모았다. 같은 종류만 고집하며 모았으면 나름의 컬렉션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후회를 거듭하면서도 여전히 홀딱 반한 물건들을 수집하는, 사물 한정 금사빠의 사는(buy) 이야기.
글·사진 김나영 에디터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