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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니 행복이 함께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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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란토마토 댓글 0건 조회 212회 작성일 19-11-13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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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니 행복이 함께 하더라
-나는 아무도 찾지 않는 싸이월드에서 여전히 일기를 쓴다- 


"아니야. 난 가본 적 없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작은 언쟁이 벌어졌다. 10년 전쯤에 친구와 내가 함께 간 찻집을 친구는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내 기억엔 분명 친구와 함께 가서 책을 읽고 과제를 하고 수다를 떨기도 했는데 말이다. 몇 번을 맞다고 말했지만 친구 역시 연이어 아니라 고개를 돌렸다. 답답한 마음이 커져갈 때쯤 불현듯, 머리속에 일기 하나가 생각났다. 당시 성행하던 SNS인 싸이월드에 친구와 함께 한 그날을 기록해두었던 것이었다.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 싸이월드 어플을 클릭했다. 그리고 유유히 남겨져있는 그 날의 사진들을 발견했다. 친구가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카페에서 과제를 하고 책을 읽는 우리들의 모습이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친구는 내가 내민 증거에 혀를 내두르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고 보면 네가 유독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한 일들을 세세히 기억하고 있는 편인 것 같다는 말 또한 덧붙였다. 나역시 수긍이 갔다. 오래전 친구들이 헷갈려하는 일들을 대부분 나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들의 원천은 모두 싸이월드에 남긴 일기들에서 비롯됐다. 싸이월드에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한 2004년부터의 기억이 또렷한 것을 보아 합당한 추측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진 듯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지만, 여전히 나는 하루같이 발도장을 찍으러 싸이월드에 온다. 나말고는 아무도 찾지 않아 매일이 방문수 0인 미니홈피.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연결되는 다른 SNS들과는 제대로 동떨어진, 마치 외딴섬이나 무인도 같은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들에게는 SNS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고독하고 황량한 곳 같겠지만 나에게만큼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의미깊은 따뜻한 곳이다. 2004년부터의 일상들이 성실하고 부단히 기록된 이곳은 나라는 한 인간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보장해 줄 만물창고나 다름없지 않을까. 다른 SNS들이 우후죽순 생겨도 쉽게 싸이월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엔 여러가지가 있었다. 이미 싸이월드에 차곡차곡 쌓인 기록들과 쭉 가고 싶은 마음이 무엇보다 컸고, 싸이월드만의 플랫폼 또한 내 취향과 잘 맞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방문이 줄어들었다는 점이 오히려 나의 일기를 부담없이, 서슴없이 올릴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SNS에 일기를 올려서 무얼 하나 싶은 회의감은 수시로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잠시 기록을 멈추기도 했지만 어김없이 나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싸이월드에 차마 올리지 못하는 내용들로 노트에 손수 일기를 적고도 있지만 싸이월드에 올리는 기록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 그에 따른 갈증을 채워주지는 못 했다. 아무래도 사진의 힘이 큰 것 같았다. 하루를 지내면서 내가 보고 겪은 것들을 카메라로 찍고 거기에 관련된 글을 적어 함께 일기로 올리고 나면 그게 그렇게 좋아서 몇번을 다시 읽을 때가 많았다. 세상 수많은 책들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보다 내가 싸이월드에 직접 올린 일기가 제일 재밌게 다가왔다.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그런 일들을 잠시 멈추었으니, 일상의 소소한 재미가 없어진 것은 분명하거니와 무엇보다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 지나간 일들은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분명히 똑같이 겪고 지나간 하루인데도 돌이켜보면 늘 기억이 희미했다.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선명히 차이가 나다니. 나이를 먹을수록 모든 것이 찰나이고, 지금은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 아프게 체감하고 있기에 나의 하루가 어이 없을 정도로 쉽게 휘발되어 버리는 것이 불안하고 두렵고 속상했다. 카메라 광고의 카피였던가,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제대로 실감이 났다.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아니 기록하지 않으면 나의 일상은 제 얼굴을 감추기에 바빴다. 그래서 다시 돌아왔다. 싸이월드에 일상을 성실하고 부단히 기록하는 본래의 나로.
나는 매일 외출을 할 때마다 카메라를 챙겨든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전에는 늘 디지털 카메라가 가방에 있었다.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풍경과 순간을 만날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나를 흔들거나 멈칫거리게 만드는 순간들을 잔뜩 모아두고 싶었다. 어쩔 땐 마음을 먹고 찍고 싶은 풍경과 순간을 만나러 갈 때도 있었다. 가을의 황금빛 논이라든지, 짧은 축제처럼 다가오는 벚꽃의 개화라든지, 아침잠을 이겨내고서야 만날 수 있는 동트는 풍경이라든지. 그럴 때마다 하루를 살고 일기를 쓰는 건지 일기를 쓰기 위해 하루를 사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근데 그 유난스러움이 나는 좋았다. 무기력함과 나태함이 나를 주기적으로 나를 덮칠 때에도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고 싶다는 원동력이 나를 구해주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그저 방안에 누워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다 들어간 싸이월드는 그런 나를 자극시켰다. 내가 쓰고 남긴 일기들을 다시 읽다보면 이불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의욕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무거운 몸이 그를 가로막을 때도 있었지만 사진 속 풍경이 보고 싶거나, 내가 좋아서 일기로 남긴 일들이 하고 싶어 무거운 몸을 일으킬 때가 더 많았다. 평소 같았음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을, 늦은 오후의 낮고 무거운 햇살이 길가의 잡초에 내려앉은 풍경조차 나에겐 눈부시게 다가왔다. 15년 가까이 넘게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일상의 지루하다면 지루할, 흔하다면 흔할 순간들이 모두 소중하고 의미깊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예전엔 자연이 그렇게 아름다운 지 몰랐다. 밤하늘에 달이 뜬 모습이 그렇게 내 마음을 달뜨게 만들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나의 하루를 기록한다는 사명감 아닌 사명감을 늘 품고 있으니 저절로 관찰자가 되어 나와 내 주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무심하게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붙잡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싶었다. 내가 쓴 일기들을 계속 꺼내보고픈 마음이 드는 건 그러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일기를 쓰거나 일기를 읽으면 이내 마음이 풀어졌다. 행복했다. 싸이월드의 기록들은 내가 위로 받고 기대고 싶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내가 남긴 기록들로 인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지 알게 될 때도 많았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라는 책에서 나와 비슷한 성실한 기록자인 김신지 작가 역시 이렇게 말했다. '순간을 모아두려는 것은 인생의 사소한 구석까지 들여다보려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이런 순간에 머무르려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구나. 알고 나면, 앞으로 나를 좀 더 자주 그런 순간으로 데려가고 싶어지기도 했다.' 나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남긴 기록들을 보며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졌다. 가끔 삶이 거대하고 막막하게 다가와 살아온 모든 날들이 후회스럽고 살아갈 모든 날들이 두렵게 느껴지면 싸이월드의 일기들을 읽으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평범하고 심심한 하루하루, 하지만 맑게 갠 하늘의 푸르름과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쾌청한 바람의 감촉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하고 즐거워질 수 있는 게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니까.
"기록한다는 것은 조수간만처럼 끊임없이 침식해 들어오는 인생의 무의미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죠." 작가 김영하의 말이다. 나역시 기록함으로써 알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엔 흔하고 보잘것없는 순간에도 그 안엔 누군가 발견해주기만을 기다리는 무궁무진한 의미들이 깃들여져 있음을. 앞으로도 계속 싸이월드에 발도장을 찍으며 인생의 무의미에 맞서고 싶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결국은 싸이월드가 문을 영영 걸어잠그는 일이 언젠가는 오겠지만 그때까진 성실하고 부단히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부디 싸이월드가 영원하길 바라며 며칠동안 쌓인 일상들을 또 한바탕 풀어놓으려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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