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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해주고 좋은청나라 군은 병자호란 당시 병참에 약하다, 해전에 약하다는 본인들의 약점을 오히려 역으로 활용했다. 방심을 유발한 뒤, 약점을 극복하는 전략으로 조선군을 대파했다. 사진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한국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장면이라고 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것이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이다.
임진왜란 7년간 적에게 항복하지 않았던 조선 국왕이 병자호란 때는 불과 50일 만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였으니 실로 충격적인 패배였다.
그나마 임진왜란 야마토연타 이전에는 200년 동안 전쟁이 없었으므로 군사적 대비가 허술했다는 변명이 통한다. 하지만 1637년 1월에 청군이 압록강을 건너면서 시작된 병자호란은 1598년에 종결된 임진왜란의 40년 후이다. 1627년에 겪은 정묘호란의 10년 후에 발발한 전쟁이었으니 조선이 전쟁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장수와 군사들이 많 오리지널골드몽 았을 것이다.
더구나 당시 청나라와 가까웠던 광해군을 쫓아내고 즉위한 인조는 노골적으로 명나라 편을 들면서 청나라에 적개심을 보이고 있었으므로 청나라의 침략에 대한 준비를 당연히 했을 텐데, 어찌하여 불과 50일 만에 국왕이 직접 항복하는 비참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인가?
역사학자 연구에 따르면 당시 조선의 군대는 나름의 바다신2게임 방어책을 가지고 철저한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아무 생각도 없는 오합지졸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이다.
평안도 지역에는 강군을 배치하여 청나라 군대를 막으면서 시간을 버는 동안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여 안전을 확보하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군사들이 바로 한양 쪽으로 달려와서 청군과 싸운다는 전략이었다고 한다. 동시에 바다이야기모바일 조선의 수군은 강화도 부근으로 북상해서 청나라 군대가 강화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바닷길을 막을 예정이었다.
실제로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군대는 이런 전략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훈련이 부족한 겁먹은 오합지졸이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실로 무참하게 패배했던 이유는 이런 조선의 전략이 청나라 홍타이지에게 완벽히 파악 신천지릴게임 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방어 전략은 정묘호란 때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었다. 정묘호란 때 청나라 군대는 평안도 지역의 중요한 성들을 하나씩 함락시키며 전진했다. 따라서 청나라 군대가 전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조가 강화도로 피신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청나라 군대의 입장에서는 압록강에서 멀리 떨어진 한양을 대군을 이끌고 공격하기 위해서는 많은 군량미를 운송해야 했으므로, 압록강과 한양 사이의 성들을 함락시키지 않고 진격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작전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조선의 인조는 병자호란 때도 청나라 군대가 평안도의 성들을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북쪽 성들의 방어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런 조선의 생각을 간파한 청나라 홍타이지는 평안도 지역의 성을 하나도 공격하지 않고 바로 한양으로 진격했다. 일부러 1월 3일이라는 가장 추운 시기를 선택했기에 조선의 모든 강들이 얼어붙어 청나라 기병들이 말을 타고 진격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개성에 도착한 청나라 기병대는 우선 한양에서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차단했다. 따라서 인조는 강화도를 포기하고 남한산성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게임이론에는 혼합전략균형(mixed strategy equilibrium)이라는 개념이 있다. 적에게 나의 전략을 노출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를 분석하는 이론이다. 혼합전략균형에 따르면 나의 강점으로 적을 대하지 말고 오히려 나의 약점으로 적을 대하는 것이 승률을 높일 수 있다. 왜냐하면 적은 내가 나의 강점을 이용하여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해 이를 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오히려 나의 약점을 이용해서 공격해야 효과적이라는 의미이다.
병자호란에서 청나라 홍타이지는 혼합전략균형을 이해하고 있었다. 먼 길에 원정을 떠난 청나라 군대는 성을 하나씩 함락시키면서 병참선을 확보하는 전략이 유리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병참선이 위협을 받을 수 있는 한양으로의 진격이라는 불리한 전략을 택해 성벽 방어에만 치중했던 조선의 전략을 이길 수 있었다. 반면 조선의 인조는 조선군에 불리한 평야에서의 전투를 피하고 조선군의 장점이었던 공성전만 준비했으니 혼합전략균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가장 쉬운 예를 들면 오른손잡이 권투 선수는 오른손 주먹보다 왼손 주먹을 훨씬 많이 사용한다. 물론 강한 오른손 펀치가 상대에게 명중되면 좋다. 하지만 벌써 상대가 내 오른손 주먹을 피하기 위해 방어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약하지만 명중률이 높은 왼손 펀치가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약하지만 왼손을 상대에게 자꾸 명중시키면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다.
청나라 홍타이지의 혼합전략균형은 곧바로 한양으로 진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부터 한 번도 함락되지 않았던 강화도를 홍타이지는 점령한다. 물에 약한 청나라 군대가 어떻게 강화도로 건너갈 수 있었는가? 물론 조선 수군은 작전 계획대로 강화도 근처의 바다를 굳게 지키고 있었는데 말이다.
당시 조선의 수군은 왜군과도 싸워 이겼던 거대한 판옥선으로 청나라 군대가 강화도로 침공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한편 청나라 군대는 아주 작은 조각배 44척을 동원해 강화도로 건너려고 했다. 물론 대포를 장착한 거대한 판옥선과 작은 조각배가 전투를 벌이면 조각배가 일방적으로 몰살당하게 된다. 그런데 청나라 군대가 생각한 것이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조류의 흐름이 빠른 시기였다고 한다. 작은 조각배는 조수간만으로 바다가 얕아지고 빠른 조류가 흐를 때에도 강화도를 향해 빨리 노를 저어갈 수 있지만, 조선의 거대한 판옥선은 얕은 바다에서는 조각배보다 운행이 어려우며 거센 조류가 몰려오면 속도가 많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청나라 군대의 이런 조수간만과 조류를 이용한 작전으로 조선의 막강한 판옥선은 청나라 군대를 태운 조각배들이 강화도에 상륙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혼합전략균형을 가장 잘 이용하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에이즈(AIDS) 바이러스는 한때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에이즈 바이러스가 약해도 너무 약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공기 중에 몇 초만 노출되어도 바로 소멸한다. 따라서 독감 바이러스처럼 옆 사람이 재채기를 한다고 해서 감염되지 않는다. 결국 에이즈 바이러스가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사기를 같이 쓰든지 성행위를 하는 경우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즈 바이러스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는데 그 이유는 잠복기에 있다. 독감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오면 대개 2~3일 만에 열이 나고 기침을 하며 증상이 나타난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짧으면 2년이고 길면 20년이 넘는다. 평균 잠복 기간이 10년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무리 강력한 바이러스라도 증상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조심한다. 열이 나고 기침을 심하게 하는 친구 곁에는 가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에이즈는 바이러스가 몸속에 들어와서 10년간 아프지 않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에이즈 바이러스를 가진 본인도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무리 약한 에이즈 바이러스라도 상대방이 전혀 경계하지 않는 상황에서 놀랍게 전염시킬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약점을 앞세워 내 강점을 공략할 수 있다. 인조가 이런 교훈을 알고 대비했다면 삼전도의 치욕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3호 (2026.01.14~01.20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c) 매경AX.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한국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장면이라고 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것이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이다.
임진왜란 7년간 적에게 항복하지 않았던 조선 국왕이 병자호란 때는 불과 50일 만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였으니 실로 충격적인 패배였다.
그나마 임진왜란 야마토연타 이전에는 200년 동안 전쟁이 없었으므로 군사적 대비가 허술했다는 변명이 통한다. 하지만 1637년 1월에 청군이 압록강을 건너면서 시작된 병자호란은 1598년에 종결된 임진왜란의 40년 후이다. 1627년에 겪은 정묘호란의 10년 후에 발발한 전쟁이었으니 조선이 전쟁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장수와 군사들이 많 오리지널골드몽 았을 것이다.
더구나 당시 청나라와 가까웠던 광해군을 쫓아내고 즉위한 인조는 노골적으로 명나라 편을 들면서 청나라에 적개심을 보이고 있었으므로 청나라의 침략에 대한 준비를 당연히 했을 텐데, 어찌하여 불과 50일 만에 국왕이 직접 항복하는 비참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인가?
역사학자 연구에 따르면 당시 조선의 군대는 나름의 바다신2게임 방어책을 가지고 철저한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아무 생각도 없는 오합지졸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이다.
평안도 지역에는 강군을 배치하여 청나라 군대를 막으면서 시간을 버는 동안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여 안전을 확보하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군사들이 바로 한양 쪽으로 달려와서 청군과 싸운다는 전략이었다고 한다. 동시에 바다이야기모바일 조선의 수군은 강화도 부근으로 북상해서 청나라 군대가 강화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바닷길을 막을 예정이었다.
실제로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군대는 이런 전략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훈련이 부족한 겁먹은 오합지졸이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실로 무참하게 패배했던 이유는 이런 조선의 전략이 청나라 홍타이지에게 완벽히 파악 신천지릴게임 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방어 전략은 정묘호란 때의 경험에 기초한 것이었다. 정묘호란 때 청나라 군대는 평안도 지역의 중요한 성들을 하나씩 함락시키며 전진했다. 따라서 청나라 군대가 전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조가 강화도로 피신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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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선의 생각을 간파한 청나라 홍타이지는 평안도 지역의 성을 하나도 공격하지 않고 바로 한양으로 진격했다. 일부러 1월 3일이라는 가장 추운 시기를 선택했기에 조선의 모든 강들이 얼어붙어 청나라 기병들이 말을 타고 진격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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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에서 청나라 홍타이지는 혼합전략균형을 이해하고 있었다. 먼 길에 원정을 떠난 청나라 군대는 성을 하나씩 함락시키면서 병참선을 확보하는 전략이 유리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병참선이 위협을 받을 수 있는 한양으로의 진격이라는 불리한 전략을 택해 성벽 방어에만 치중했던 조선의 전략을 이길 수 있었다. 반면 조선의 인조는 조선군에 불리한 평야에서의 전투를 피하고 조선군의 장점이었던 공성전만 준비했으니 혼합전략균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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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홍타이지의 혼합전략균형은 곧바로 한양으로 진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부터 한 번도 함락되지 않았던 강화도를 홍타이지는 점령한다. 물에 약한 청나라 군대가 어떻게 강화도로 건너갈 수 있었는가? 물론 조선 수군은 작전 계획대로 강화도 근처의 바다를 굳게 지키고 있었는데 말이다.
당시 조선의 수군은 왜군과도 싸워 이겼던 거대한 판옥선으로 청나라 군대가 강화도로 침공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한편 청나라 군대는 아주 작은 조각배 44척을 동원해 강화도로 건너려고 했다. 물론 대포를 장착한 거대한 판옥선과 작은 조각배가 전투를 벌이면 조각배가 일방적으로 몰살당하게 된다. 그런데 청나라 군대가 생각한 것이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조류의 흐름이 빠른 시기였다고 한다. 작은 조각배는 조수간만으로 바다가 얕아지고 빠른 조류가 흐를 때에도 강화도를 향해 빨리 노를 저어갈 수 있지만, 조선의 거대한 판옥선은 얕은 바다에서는 조각배보다 운행이 어려우며 거센 조류가 몰려오면 속도가 많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청나라 군대의 이런 조수간만과 조류를 이용한 작전으로 조선의 막강한 판옥선은 청나라 군대를 태운 조각배들이 강화도에 상륙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혼합전략균형을 가장 잘 이용하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에이즈(AIDS) 바이러스는 한때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에이즈 바이러스가 약해도 너무 약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공기 중에 몇 초만 노출되어도 바로 소멸한다. 따라서 독감 바이러스처럼 옆 사람이 재채기를 한다고 해서 감염되지 않는다. 결국 에이즈 바이러스가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사기를 같이 쓰든지 성행위를 하는 경우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즈 바이러스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는데 그 이유는 잠복기에 있다. 독감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오면 대개 2~3일 만에 열이 나고 기침을 하며 증상이 나타난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짧으면 2년이고 길면 20년이 넘는다. 평균 잠복 기간이 10년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무리 강력한 바이러스라도 증상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조심한다. 열이 나고 기침을 심하게 하는 친구 곁에는 가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에이즈는 바이러스가 몸속에 들어와서 10년간 아프지 않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에이즈 바이러스를 가진 본인도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무리 약한 에이즈 바이러스라도 상대방이 전혀 경계하지 않는 상황에서 놀랍게 전염시킬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약점을 앞세워 내 강점을 공략할 수 있다. 인조가 이런 교훈을 알고 대비했다면 삼전도의 치욕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3호 (2026.01.14~01.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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