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알리스의 효과로 자신감도 사랑도 완벽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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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원님희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6-01-27 05:28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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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알리스의 효과로 자신감도 사랑도 완벽하게
발기부전ED은 남성의 자신감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흔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다양한 약물 중 시알리스Cialis는 독특한 특성과 장점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시알리스의 작용 원리, 효과,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감과 사랑을 완벽하게 되찾은 사례들을 중심으로 시알리스가 가져다주는 변화를 조명해보겠습니다.
발기부전과 그 영향
발기부전은 남성의 삶에 신체적, 심리적, 그리고 대인 관계 측면에서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심리적 영향: 자신감을 상실하거나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대인 관계 문제: 발기부전은 파트너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성적 친밀감 부족이 관계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회적 불안: 발기부전 문제를 숨기려는 시도로 인해 사회적 활동이나 새로운 관계 형성에 소극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남성들이 시알리스와 같은 약물을 찾게 됩니다.
시알리스란 무엇인가?
시알리스는 타다라필Tadalafil을 주성분으로 하는 약물로, PDE5포스포디에스터라제 타입 5 효소를 억제하여 발기를 촉진합니다. 그러나 시알리스는 단순히 발기부전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특한 특징 덕분에 다른 PDE5 억제제와 차별화됩니다.
시알리스의 특징
긴 효과 지속 시간: 시알리스는 한 번 복용으로 최대 36시간 동안 효과를 발휘할 수 있어 주말 알약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연한 복용 방식: 필요 시 복용하는 방식 외에도, 하루 한 번 복용으로 꾸준히 사용하는 장기 치료 옵션도 가능합니다.
음식의 영향 없음: 시알리스는 식사와 상관없이 복용할 수 있어 실용적입니다.
다양한 적응증: 시알리스는 발기부전 외에도 양성 전립선비대증BPH 치료에 사용됩니다.
시알리스의 효과로 얻는 자신감과 사랑
사례 1: 새로운 시작의 열쇠
이 모 씨48세는 몇 년간 발기부전으로 인해 자신감을 잃고, 연애를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의사의 추천으로 시알리스를 복용한 후, 그는 나 자신을 다시 믿게 되었고, 연애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며 새로운 파트너와 성공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사례 2: 부부 관계 회복
박 모 씨55세는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시알리스를 정기적으로 복용하면서 그는 부부간의 친밀감을 되찾았고, 이제는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전했습니다.
시알리스 복용의 안전성과 주의점
시알리스는 효과적인 약물이지만, 안전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용 전 상담
시알리스를 복용하기 전, 반드시 의사와 상담하여 개인 건강 상태와 적합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심혈관 질환, 저혈압 또는 고혈압 약물 복용 중인 경우, 약물 상호작용에 주의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부작용
시알리스의 흔한 부작용으로는 두통, 소화불량, 근육통, 안면 홍조, 허리 통증 등이 있습니다.
드물게 심각한 부작용으로는 시각 또는 청각 문제, 지속적인 발기4시간 이상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런 증상이 나타날 경우 즉시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복용 방법
시알리스는 10mg 또는 20mg을 성행위 30분~1시간 전에 복용합니다.
매일 복용 옵션은 2.5mg 또는 5mg으로, 꾸준히 일정한 시간에 복용합니다.
시알리스 사용을 위한 팁
건강한 생활 습관 유지: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단, 금연, 절주 등은 시알리스의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관리: 심리적 요인이 발기부전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합니다.
정기적 건강 검진: 약물을 장기간 사용할 경우, 정기적으로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결론: 자신감과 사랑을 되찾는 열쇠
시알리스는 단순히 발기부전을 치료하는 약물이 아니라, 많은 남성들에게 자신감과 삶의 질을 회복시키는 도구입니다. 효과적이고 유연한 사용 방식을 통해, 시알리스는 남성들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도와줍니다.
하지만 약물 사용은 신중해야 하며, 반드시 전문의의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시알리스는 올바른 사용으로 더 나은 삶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삶과 사랑을 원한다면, 시알리스가 그 여정에서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기자 admin@seastorygame.top
■ 방송 : 경인방송 <굿모닝 인천, 박주언입니다> (FM 90.7MHz 오전 7~9시 방송)
■ 코너 : 시사돋보기
■ 진행 : 박주언 앵커
■ 인터뷰 : 최요한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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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저작권은 경인방송에 있습니다. 인용 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박주언 : 경인방송 90.7MHz 굿모닝 인천 박주언입니 사이다쿨접속방법 다. 2부는 <시사돋보기> 시간입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전 9시 1분에 1.87%가 상승한 5001.97을 기록하면서 개장 직후에 '꿈의 오천피'를 찍었습니다. 오늘은요. 우리 대한민국 증시의 역사를 한번 살펴볼까 하는데요. 최요한 평론가 전화 연결되어 있습니다. 평론가님 안녕하십니까?
◇ 최요한 : 예, 반갑습니다. 최 릴게임추천 요한입니다.
◆ 박주언 : 네, 반갑습니다. 지난 22일이었어요. 모든 언론들이 일제 보도를 했었는데 개장하자마자 꿈의 오천피를 기록했죠.
◇ 최요한 : 사실 뭐 요즘 오천피 찍고 나니까 예전에 이제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한 것에 대해서 조롱하는 이준석, 진중권, 나경원 의원 그리고 슈카월드까지 포함해서 막 비판하더라고요. 바다이야기예시야마토게임 근데 말씀드렸지... 다들 얘기했잖아요. 꿈의 오천피라고. 꿈으로 생각했지 실제로 생각한 사람이 많지 않았거든요. 근데 꿈이 현실화가 된 거예요.
◆ 박주언 : 그러게요.
2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 골드몽 에 코스피, 코스닥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2026.1.26 [사진=연합뉴스]
◇ 최요한 : 그거 참 대단한 거거든요. 이게 1980년 1월 4일의 초가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100을 삼아서 산출하면 46년 만에 50배가 된 겁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외환위기와 금융위 바다이야기슬롯 기, 코로나 등 언뜻 생각해도 엄청나게 많은 일을 당했지 않습니까? 우여곡절. 근데 그거를 극복하고 이뤄낸 성과이고 게다가 늘 코리아 디스카운트. 아 나 이 얘기가 너무 지긋지긋하게 많이 들어서...
◆ 박주언 : 그렇죠.
◇ 최요한 : 이걸로 정체됐던 시장이고 맨날 기관, 외국인 휘둘리면서 개미 투자자들만 손해 보는 기울어진 시작이다. 막 이랬는데 막 작년부터 전 세계 수익률 1위, 올해는 몇십 퍼센트 막 이렇게 나오니까,
자 지금 투자자들의 관심은 온통 얼마나 더 갈 것인가에 맞춰 있겠지만 이 우상향 행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혁신과 성장이 필요합니다.
주식시장은 상장된 기업에 투자해서 실적을 올리고 그 성과를 주주들과 나누는 선순환이 되겠죠. 상장 기업의 성장이 없는 증시는 주가가 오를 수 없고,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혁신과 기술 개발이 필수적이죠.
우량 기업을 선발해서 장기 투자하는 투자자, 지속적인 혁신과 기술 개발로 수익성 높이고 배당을 통해서 주주들과 함께 성장하는 상장 기업. 그리고 시장이 공정한지 막 운영하고 제도 개선 통해서 이 혁신과 성장을 뒷받침하는 금융당국. 이 세 가지가 잘 맞춰져야 집 나간 서학개미들 돌아오고 해외에서 또 거대한 투자금 유치할 수 있고 막 그럴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박주언 : 그러게요.
◇ 최요한 : 꿈의 오천피였는데 그 꿈이 현실화되고 나니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많아져요. 지금 뭐 반도체 등 일부 대형 수출 기업에 상승세가 쏠렸다. 불균형하다.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가 너무 과대하게 영향력이 커졌다.
실적 개선과 배당도 확대해야 되는데 지금 뭐 하냐. 왜 주주들 경시하냐. 뭐 해결해야 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어쨌든 이러한 여러 가지 과제들 지속적으로 해결해 나가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아니라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가 열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박주언 : 그러게요. 뭔가 건강하게 흘러가야 될 것 같다는 느낌도 드는데 그러면 이제 어쨌든 마침내 사상 처음 5000p 돌파를 했잖아요. 이 배경이 어디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 최요한 : 숫자가 앞자리가 이제 2에서 3으로, 3에서 4로, 4에서 5로 숫자가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시장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때 박스피라는 말이 일상이었잖아요. 이제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 중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고. 외신들은 외신들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당시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열린 서초구·강남구 유세에서 '코스피 5000 시대'를 들어 보이며 경제회복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5.5.30 [사진=연합뉴스 제공]
제가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뭐 그게 아니라 외신들이 이야기하기를 이 코스피 흐름을 단순한 주가 상승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체질 자체가 바뀐다. 이 신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3일날 4천 선 돌파한 이후에 불과 33거래일 만에 5000p를 달성했습니다.
이건 당연히 이제 반도체죠. 삼성전자, SK 하이닉스는 물론이고 여기에 현대차, LG 에너지솔루션, 두산 에너빌리티, 시가총액 강세 상위 종목들이 줄줄이 강세를 보였습니다. 외신들은 한국증시가 더 이상 경기에 민감한 수출 주 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AI 산업의 핵심 인프라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다.
지금 AI 얘기 나오면서 3강 얘기하는... 미국 중국에 이어서 3위 하겠다라고 하고 있잖아요. 목표로 삼았는데 지금 그렇게 되고 있어요. 지금 세계적인 경제매체 블룸버그 같은 경우는 한국이 세계 AI 붐의 중심에 있다라는 신호다 뭐 이렇게 평가를 해요.
실제로 지금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인데 최소 2027년까지는 이어질 거다. 그럼 AI가 클라우드라든지 자율 주행이라든지 로봇, 국방 시스템까지 확산되면서 칩이 권력이다. 한국 반도체가 가장 수혜를 입고 있다라는 거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도 이런 변화에는 한국 정부의 정책 변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코스피는 지난해 한 해 동안 76% 상승해서 G20 증시 가운데 1등입니다. 1위였어요. 올 1월만 해도 19%가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뭐 반도체 주가 강세 있죠. 기대가 컸고 대한민국 정부의 자본시장 개혁과 그러면서 디스카운트 해소하는 등 여러 가지 정책이 시행되고 또 제가 지금은 말씀 안 드렸습니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 관세 이거 철폐한 거. 이거는 뭐냐 변동성 낮춘 거는 한국 증시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 거예요.
그만큼 한국 증시가 한국 경제가 덩치가 커졌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에도 많이 받는 거죠. 이런 여러 가지들이 결국은 5000p를 달성하게 된 배경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박주언 : 그러게요.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그동안의 역사를 좀 알고 싶거든요. 어디에서부터 정리를 하면 좋을까요?
◇ 최요한 : 이거 우리 일제시대 때도 증권거래소가 있었어요. 이름이 조선증권취인소라고 합니다. 근데 이 증권거래소는요. 조선 사람들이 증권 거래를 한다기보다 식민지 조선에 나와 있던 일본인들이 증권 거래하는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일종의 이제 이게 이제 사실은 쌀 거래를 기반으로 한 투기적 성격도 띠었다고 하고요. 사실 일본은요 1878년부터 주식 거래를 했습니다. 굉장히 빨랐죠.
◆ 박주언 : 그렇네요.
◇ 최요한 : 1920년에는 선물 거래까지 했습니다. 미국은 1790년대 첫 주식거래소를 열었고요. 유럽은 물론 그것보다 더 오래됐고. 그러니까 당시 우리나라 식민지 일제 강점기 시절에 는 이미 자본주의와 주주와 회사와 주식들의 개념은 세계적으로 이미 익숙한 상태였지만 우리 한국 사람, 당시 조선 사람들한테 도움되는 형태는 아니었다. 이렇게 보입니다.
뉴욕 증권거래소.[사진=연합뉴스]
◆ 박주언 : 그러면 이제 우리가 본격적으로 할 수 있었던 건 해방 후였겠네요.
◇ 최요한 : 그렇죠. 해방 후에 그리고 얼마 안 지나서 한국 전쟁 6.25 한반도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때의 전후 복구 재원 마련을 위해서 1953년에 대한 증권협회가 설립됩니다. 그러면서 자본시장 육성 필요성이 제기가 돼요.
그리고 현대적인 증권거래소가 처음 등장한 건 1956년에 재무부 주도로 설립된 대한증권거래소라고 합니다. 56년 3월 3일날 증권거래소가 문을 열었는데 서울 명동에. 이때 뭐 조흥은행, 저축은행, 상업은행, 흥업은행 등 4개 은행과 경성방직, 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등 8개 기업, 그러니까 총 12개에 불과했대요.
그러면서 국채 3종도 건국국채라고 해서 이때 단계에 거론이 됐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작업이 수작업이라고 하는데 재미있는 거는 뭐냐 하면 거래소에 모인 중개인들이 호가를 내죠. 거래소 직원이 격탁이라고 불리는 거래 체계를 알리는 물건을 탁탁탁 이렇게 두들깁니다.
그래서 가격을 결정해요. 그리고 주식 매매 주문은 전화를 통해서 증권사 본점, 지점 여기다 다 전화를 일일이 합니다. 그리고 거래소로 다시 주문이 전달되는데 이게 한 1시간 걸린대요. 1시간 걸리면 그것도 칠판에 씁니다.
손으로. 얼마, 누가 이거 매매됐다 그러면서 방송에다가 거시기 거 아무개 씨 예 매매 계약 체결됐습니다. 이렇게 체결될 때마다 거래소 방송을 통해서 공지했다라는 거예요. 정말 진짜 까맣게 정말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 얘기죠.
◆ 박주언 : 그러네요 진짜. 그러고 나서 이제 박정희 정권에서 본격적으로 증권 거래 시작이 됐다고요
◇ 최요한 : 그렇습니다. 이때 이제 막 구멍가게 수준이었던 주식 시장이 박정희 정부 들어서 전환기를 맞았는데 특히 72년도에 이루어진 '기업 공개 촉진법'이 탄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1970년에 48개에 불과했던 상장사가 1978년에 356개사가 됐고 주식 거래도 429억 원에서 1조 7,415억 원으로 40.6배가 불어났다라는 것이죠. 이게 이제 증시를 주도한 게 중동 건설 붐을 탔던 건설주였다라고 합니다.
이게 또 나중에 오일쇼크와 경제 성장 둔화로 1년 사이에 70% 이상 폭락했대요. 건설주 파동이라고 하거든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던 물건 탁탁탁 부딪혀 격탁 이게 또 나중에 이제 육각형 모양의 단상 포스트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포스트 매매로 바뀌고 증권거래소는 명동에서 여의도로 이전하면서 손으로 쓰던 칠판이 전자식 시세 게시판으로 바뀝니다. 그러면서 여의도에 한국 자본시장의 메카가 자리 잡게 되는 상황이 됩니다.
◆ 박주언 : 그러게요. 그런데 이제 부정적이지만 이 시기가 개발 독재 과정이다 보니까 증권 파동도 있었다고요.
◇ 최요한 : 증권 파동. 박정희 정권 초에 1962년 5월에 증권 파동이 벌어지는데 이게 뭐냐 하면은 중앙정보부가, 그 날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그런 이제 권력을 마구마구 남용하던 그 KCIA, 중앙정보부하고 일부 증권 업자들이 이 주가 조작을 한 거죠.
지금의 주가 조작을 한 겁니다. 막 이렇게 여러 가지 하다 보니까 주가 조작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해야 되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다 보니까 그 증권거래소 주식 등이 매점되고 주가가 급등했는데 증권업자들은 자금 부족으로 주식 결제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증권시장에 큰 혼란이 왔겠죠. 난리가 난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군사 정권이 정치자금 마련한다 이런 소문이 돌면서 당시에 워커힐 사건, 새나라 자동차 사건, 빠찡꼬 사건 등과 함께 4대 의혹 사건으로 이 증권 파동이 엄청나게 큰 사건이 됩니다.
부정적 이미지를 준 거죠. 그러니까 증시는 주로 당시에 국영기업 민영화와 공기업 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이 됐는데 이게 또 국가와 재벌 주도의 폐쇄적 구조다 보니까 권력이 여기서 뭐 빼먹을 거 없을까.
공적 이런 정치 자금으로 활동을 활용해야 되는데 하면서 손을 댄 거고 이것이 좀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보니까 주식 투자는 일부 계층의 투기적 수단으로 인식되는 지금도 아유 주식 투자하는 거야? 막 이런 어르신들의 부정적인 목소리가 큰 이렇게 된 거 같아요 보니까.
◆ 박주언 : 초기 인식이 그렇게 잡힌 거고 그러다가 이제 80년대부터는 대중화의 길을 걸었다고요.
추위가 절정을 보인 22일 오전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나온 수증기와 연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있다. 2026.1.22 [사진=연합뉴스]
◇ 최요한 : 80년대는 이제 현재 포스코 포항제철이라든지 한국전력이라든지 국가 기관 산업이나 공공성이 높은 기업들의 주식이 이제 국민주 형태로 보급됐는데 특히 바뀐 거는 온라인 거래 기틀도 이때 닦였습니다.
83년 2월, 지금과는 조금 다르지만 증권 온라인 시스템 가동에 들어갔고 86년부터는 지금까지 계속 전화 통화를 통해서 이루어진 매매를 컴퓨터로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뭐 그런데 대중화됐다고 다들 주식 투자하는 시대도 아니었고 아직 컴퓨터라든지 주식에 대한 이해도 조금 아직 좀 이전보다 늘기야 늘었겠지만
좀 이렇게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주식이 어려운, 그래서 한국 주식의 짧은 역사,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주식, 이런 점을 악용했던 몇 가지 큼지막한 사건들도 벌어지고 그래서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들이 먼저 투자하게 되고 교육도 부족하고 막 그러다 보니까 한국 사람들은 돈 생기면 주식보다는 어디 투자합니까? 부동산에 투자하게 된 거예요.
◆ 박주언 : 그러게요. 진짜 짧은 역사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대부분 일들이 이렇게 급변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긴 한데 어쨌든 이제 5000p 기록을 했거든요. 이후에 우려할 점이나 시사점, 어떻게 봐야 될까요?
◇ 최요한 : 지금 뭐 여러 가지 동학개미 논란도 있고 우리는 그 사이에 뭐랄까 이렇게 막 뭐 여러 가지 어려운 코스닥 투자 열풍을 했다가 막 꺼지기도 하고 막 난리가 났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현재 오천 랠리는 기관과 외국인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개미들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소극적입니다.
코스피 지수가 장중 사상 처음으로 5,019.54를 기록한 22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코스피 지수 5,000선 돌파를 축하하고 있다. 2026.1.22 [사진=연합뉴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들, 여전히 부동산 경기 침체라든지 이런 것들을 증명해야 되고 또 글로벌 정치 리스크도 한국의 변동성을 키우는 것이기도 하고 어쨌든 5000p는 달성했는데 이제 싸게 거래된 나라가 아니라 미래 산업의 중심 시장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어요.
특히 AI 관련돼서 그렇거든요. 전문가들은 코스피 5천이 도착지가 아니라 이제 막 열린 새로운 게임판에 가까웠다고 평가하고 있으니 우리 이 청취자 여러분들도 한국 증시가 경제의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 해 주셨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박주언 : 그러게요. 지금 문자가 도착했는데 5846님이 주알못이라 박스 티는 들어봤어도 박스피는 못 들어봤는데 이야기 보따리 할아버지처럼 쉽게 풀어주셔서 재밌게 잘 들었다고 아 감사 문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4939님도 오늘 수원으로 출근하는 버스에서 듣고 있는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주식 얘기 흥미롭네요라고 해 주셨거든요. 재미나게 얘기를 풀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자, 오늘 우리 한국증시의 역사, 그리고 이번에 꿈의 숫자 5000p를 달성한 증시에 대한 해석을 정리해 봤습니다. 평론가님 감사합니다.
◇ 최요한 : 네, 감사합니다.
◆ 박주언 : 네, 지금까지 <시사돋보기> 최요한 시사평론가와 함께 얘기 나눠봤습니다.
최요한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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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박주언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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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언 : 경인방송 90.7MHz 굿모닝 인천 박주언입니 사이다쿨접속방법 다. 2부는 <시사돋보기> 시간입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전 9시 1분에 1.87%가 상승한 5001.97을 기록하면서 개장 직후에 '꿈의 오천피'를 찍었습니다. 오늘은요. 우리 대한민국 증시의 역사를 한번 살펴볼까 하는데요. 최요한 평론가 전화 연결되어 있습니다. 평론가님 안녕하십니까?
◇ 최요한 : 예, 반갑습니다. 최 릴게임추천 요한입니다.
◆ 박주언 : 네, 반갑습니다. 지난 22일이었어요. 모든 언론들이 일제 보도를 했었는데 개장하자마자 꿈의 오천피를 기록했죠.
◇ 최요한 : 사실 뭐 요즘 오천피 찍고 나니까 예전에 이제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한 것에 대해서 조롱하는 이준석, 진중권, 나경원 의원 그리고 슈카월드까지 포함해서 막 비판하더라고요. 바다이야기예시야마토게임 근데 말씀드렸지... 다들 얘기했잖아요. 꿈의 오천피라고. 꿈으로 생각했지 실제로 생각한 사람이 많지 않았거든요. 근데 꿈이 현실화가 된 거예요.
◆ 박주언 : 그러게요.
2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 골드몽 에 코스피, 코스닥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2026.1.26 [사진=연합뉴스]
◇ 최요한 : 그거 참 대단한 거거든요. 이게 1980년 1월 4일의 초가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100을 삼아서 산출하면 46년 만에 50배가 된 겁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외환위기와 금융위 바다이야기슬롯 기, 코로나 등 언뜻 생각해도 엄청나게 많은 일을 당했지 않습니까? 우여곡절. 근데 그거를 극복하고 이뤄낸 성과이고 게다가 늘 코리아 디스카운트. 아 나 이 얘기가 너무 지긋지긋하게 많이 들어서...
◆ 박주언 : 그렇죠.
◇ 최요한 : 이걸로 정체됐던 시장이고 맨날 기관, 외국인 휘둘리면서 개미 투자자들만 손해 보는 기울어진 시작이다. 막 이랬는데 막 작년부터 전 세계 수익률 1위, 올해는 몇십 퍼센트 막 이렇게 나오니까,
자 지금 투자자들의 관심은 온통 얼마나 더 갈 것인가에 맞춰 있겠지만 이 우상향 행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혁신과 성장이 필요합니다.
주식시장은 상장된 기업에 투자해서 실적을 올리고 그 성과를 주주들과 나누는 선순환이 되겠죠. 상장 기업의 성장이 없는 증시는 주가가 오를 수 없고,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혁신과 기술 개발이 필수적이죠.
우량 기업을 선발해서 장기 투자하는 투자자, 지속적인 혁신과 기술 개발로 수익성 높이고 배당을 통해서 주주들과 함께 성장하는 상장 기업. 그리고 시장이 공정한지 막 운영하고 제도 개선 통해서 이 혁신과 성장을 뒷받침하는 금융당국. 이 세 가지가 잘 맞춰져야 집 나간 서학개미들 돌아오고 해외에서 또 거대한 투자금 유치할 수 있고 막 그럴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박주언 : 그러게요.
◇ 최요한 : 꿈의 오천피였는데 그 꿈이 현실화되고 나니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많아져요. 지금 뭐 반도체 등 일부 대형 수출 기업에 상승세가 쏠렸다. 불균형하다.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가 너무 과대하게 영향력이 커졌다.
실적 개선과 배당도 확대해야 되는데 지금 뭐 하냐. 왜 주주들 경시하냐. 뭐 해결해야 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어쨌든 이러한 여러 가지 과제들 지속적으로 해결해 나가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아니라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가 열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박주언 : 그러게요. 뭔가 건강하게 흘러가야 될 것 같다는 느낌도 드는데 그러면 이제 어쨌든 마침내 사상 처음 5000p 돌파를 했잖아요. 이 배경이 어디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 최요한 : 숫자가 앞자리가 이제 2에서 3으로, 3에서 4로, 4에서 5로 숫자가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시장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때 박스피라는 말이 일상이었잖아요. 이제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 중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고. 외신들은 외신들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당시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열린 서초구·강남구 유세에서 '코스피 5000 시대'를 들어 보이며 경제회복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5.5.30 [사진=연합뉴스 제공]
제가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뭐 그게 아니라 외신들이 이야기하기를 이 코스피 흐름을 단순한 주가 상승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체질 자체가 바뀐다. 이 신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3일날 4천 선 돌파한 이후에 불과 33거래일 만에 5000p를 달성했습니다.
이건 당연히 이제 반도체죠. 삼성전자, SK 하이닉스는 물론이고 여기에 현대차, LG 에너지솔루션, 두산 에너빌리티, 시가총액 강세 상위 종목들이 줄줄이 강세를 보였습니다. 외신들은 한국증시가 더 이상 경기에 민감한 수출 주 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AI 산업의 핵심 인프라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다.
지금 AI 얘기 나오면서 3강 얘기하는... 미국 중국에 이어서 3위 하겠다라고 하고 있잖아요. 목표로 삼았는데 지금 그렇게 되고 있어요. 지금 세계적인 경제매체 블룸버그 같은 경우는 한국이 세계 AI 붐의 중심에 있다라는 신호다 뭐 이렇게 평가를 해요.
실제로 지금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인데 최소 2027년까지는 이어질 거다. 그럼 AI가 클라우드라든지 자율 주행이라든지 로봇, 국방 시스템까지 확산되면서 칩이 권력이다. 한국 반도체가 가장 수혜를 입고 있다라는 거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도 이런 변화에는 한국 정부의 정책 변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코스피는 지난해 한 해 동안 76% 상승해서 G20 증시 가운데 1등입니다. 1위였어요. 올 1월만 해도 19%가 넘었습니다.
그러니까 뭐 반도체 주가 강세 있죠. 기대가 컸고 대한민국 정부의 자본시장 개혁과 그러면서 디스카운트 해소하는 등 여러 가지 정책이 시행되고 또 제가 지금은 말씀 안 드렸습니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 관세 이거 철폐한 거. 이거는 뭐냐 변동성 낮춘 거는 한국 증시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 거예요.
그만큼 한국 증시가 한국 경제가 덩치가 커졌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에도 많이 받는 거죠. 이런 여러 가지들이 결국은 5000p를 달성하게 된 배경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박주언 : 그러게요.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그동안의 역사를 좀 알고 싶거든요. 어디에서부터 정리를 하면 좋을까요?
◇ 최요한 : 이거 우리 일제시대 때도 증권거래소가 있었어요. 이름이 조선증권취인소라고 합니다. 근데 이 증권거래소는요. 조선 사람들이 증권 거래를 한다기보다 식민지 조선에 나와 있던 일본인들이 증권 거래하는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일종의 이제 이게 이제 사실은 쌀 거래를 기반으로 한 투기적 성격도 띠었다고 하고요. 사실 일본은요 1878년부터 주식 거래를 했습니다. 굉장히 빨랐죠.
◆ 박주언 : 그렇네요.
◇ 최요한 : 1920년에는 선물 거래까지 했습니다. 미국은 1790년대 첫 주식거래소를 열었고요. 유럽은 물론 그것보다 더 오래됐고. 그러니까 당시 우리나라 식민지 일제 강점기 시절에 는 이미 자본주의와 주주와 회사와 주식들의 개념은 세계적으로 이미 익숙한 상태였지만 우리 한국 사람, 당시 조선 사람들한테 도움되는 형태는 아니었다. 이렇게 보입니다.
뉴욕 증권거래소.[사진=연합뉴스]
◆ 박주언 : 그러면 이제 우리가 본격적으로 할 수 있었던 건 해방 후였겠네요.
◇ 최요한 : 그렇죠. 해방 후에 그리고 얼마 안 지나서 한국 전쟁 6.25 한반도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때의 전후 복구 재원 마련을 위해서 1953년에 대한 증권협회가 설립됩니다. 그러면서 자본시장 육성 필요성이 제기가 돼요.
그리고 현대적인 증권거래소가 처음 등장한 건 1956년에 재무부 주도로 설립된 대한증권거래소라고 합니다. 56년 3월 3일날 증권거래소가 문을 열었는데 서울 명동에. 이때 뭐 조흥은행, 저축은행, 상업은행, 흥업은행 등 4개 은행과 경성방직, 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등 8개 기업, 그러니까 총 12개에 불과했대요.
그러면서 국채 3종도 건국국채라고 해서 이때 단계에 거론이 됐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작업이 수작업이라고 하는데 재미있는 거는 뭐냐 하면 거래소에 모인 중개인들이 호가를 내죠. 거래소 직원이 격탁이라고 불리는 거래 체계를 알리는 물건을 탁탁탁 이렇게 두들깁니다.
그래서 가격을 결정해요. 그리고 주식 매매 주문은 전화를 통해서 증권사 본점, 지점 여기다 다 전화를 일일이 합니다. 그리고 거래소로 다시 주문이 전달되는데 이게 한 1시간 걸린대요. 1시간 걸리면 그것도 칠판에 씁니다.
손으로. 얼마, 누가 이거 매매됐다 그러면서 방송에다가 거시기 거 아무개 씨 예 매매 계약 체결됐습니다. 이렇게 체결될 때마다 거래소 방송을 통해서 공지했다라는 거예요. 정말 진짜 까맣게 정말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 얘기죠.
◆ 박주언 : 그러네요 진짜. 그러고 나서 이제 박정희 정권에서 본격적으로 증권 거래 시작이 됐다고요
◇ 최요한 : 그렇습니다. 이때 이제 막 구멍가게 수준이었던 주식 시장이 박정희 정부 들어서 전환기를 맞았는데 특히 72년도에 이루어진 '기업 공개 촉진법'이 탄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1970년에 48개에 불과했던 상장사가 1978년에 356개사가 됐고 주식 거래도 429억 원에서 1조 7,415억 원으로 40.6배가 불어났다라는 것이죠. 이게 이제 증시를 주도한 게 중동 건설 붐을 탔던 건설주였다라고 합니다.
이게 또 나중에 오일쇼크와 경제 성장 둔화로 1년 사이에 70% 이상 폭락했대요. 건설주 파동이라고 하거든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던 물건 탁탁탁 부딪혀 격탁 이게 또 나중에 이제 육각형 모양의 단상 포스트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포스트 매매로 바뀌고 증권거래소는 명동에서 여의도로 이전하면서 손으로 쓰던 칠판이 전자식 시세 게시판으로 바뀝니다. 그러면서 여의도에 한국 자본시장의 메카가 자리 잡게 되는 상황이 됩니다.
◆ 박주언 : 그러게요. 그런데 이제 부정적이지만 이 시기가 개발 독재 과정이다 보니까 증권 파동도 있었다고요.
◇ 최요한 : 증권 파동. 박정희 정권 초에 1962년 5월에 증권 파동이 벌어지는데 이게 뭐냐 하면은 중앙정보부가, 그 날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그런 이제 권력을 마구마구 남용하던 그 KCIA, 중앙정보부하고 일부 증권 업자들이 이 주가 조작을 한 거죠.
지금의 주가 조작을 한 겁니다. 막 이렇게 여러 가지 하다 보니까 주가 조작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해야 되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다 보니까 그 증권거래소 주식 등이 매점되고 주가가 급등했는데 증권업자들은 자금 부족으로 주식 결제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증권시장에 큰 혼란이 왔겠죠. 난리가 난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군사 정권이 정치자금 마련한다 이런 소문이 돌면서 당시에 워커힐 사건, 새나라 자동차 사건, 빠찡꼬 사건 등과 함께 4대 의혹 사건으로 이 증권 파동이 엄청나게 큰 사건이 됩니다.
부정적 이미지를 준 거죠. 그러니까 증시는 주로 당시에 국영기업 민영화와 공기업 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이 됐는데 이게 또 국가와 재벌 주도의 폐쇄적 구조다 보니까 권력이 여기서 뭐 빼먹을 거 없을까.
공적 이런 정치 자금으로 활동을 활용해야 되는데 하면서 손을 댄 거고 이것이 좀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보니까 주식 투자는 일부 계층의 투기적 수단으로 인식되는 지금도 아유 주식 투자하는 거야? 막 이런 어르신들의 부정적인 목소리가 큰 이렇게 된 거 같아요 보니까.
◆ 박주언 : 초기 인식이 그렇게 잡힌 거고 그러다가 이제 80년대부터는 대중화의 길을 걸었다고요.
추위가 절정을 보인 22일 오전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나온 수증기와 연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있다. 2026.1.22 [사진=연합뉴스]
◇ 최요한 : 80년대는 이제 현재 포스코 포항제철이라든지 한국전력이라든지 국가 기관 산업이나 공공성이 높은 기업들의 주식이 이제 국민주 형태로 보급됐는데 특히 바뀐 거는 온라인 거래 기틀도 이때 닦였습니다.
83년 2월, 지금과는 조금 다르지만 증권 온라인 시스템 가동에 들어갔고 86년부터는 지금까지 계속 전화 통화를 통해서 이루어진 매매를 컴퓨터로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뭐 그런데 대중화됐다고 다들 주식 투자하는 시대도 아니었고 아직 컴퓨터라든지 주식에 대한 이해도 조금 아직 좀 이전보다 늘기야 늘었겠지만
좀 이렇게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주식이 어려운, 그래서 한국 주식의 짧은 역사,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주식, 이런 점을 악용했던 몇 가지 큼지막한 사건들도 벌어지고 그래서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들이 먼저 투자하게 되고 교육도 부족하고 막 그러다 보니까 한국 사람들은 돈 생기면 주식보다는 어디 투자합니까? 부동산에 투자하게 된 거예요.
◆ 박주언 : 그러게요. 진짜 짧은 역사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대부분 일들이 이렇게 급변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긴 한데 어쨌든 이제 5000p 기록을 했거든요. 이후에 우려할 점이나 시사점, 어떻게 봐야 될까요?
◇ 최요한 : 지금 뭐 여러 가지 동학개미 논란도 있고 우리는 그 사이에 뭐랄까 이렇게 막 뭐 여러 가지 어려운 코스닥 투자 열풍을 했다가 막 꺼지기도 하고 막 난리가 났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현재 오천 랠리는 기관과 외국인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개미들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소극적입니다.
코스피 지수가 장중 사상 처음으로 5,019.54를 기록한 22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코스피 지수 5,000선 돌파를 축하하고 있다. 2026.1.22 [사진=연합뉴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들, 여전히 부동산 경기 침체라든지 이런 것들을 증명해야 되고 또 글로벌 정치 리스크도 한국의 변동성을 키우는 것이기도 하고 어쨌든 5000p는 달성했는데 이제 싸게 거래된 나라가 아니라 미래 산업의 중심 시장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어요.
특히 AI 관련돼서 그렇거든요. 전문가들은 코스피 5천이 도착지가 아니라 이제 막 열린 새로운 게임판에 가까웠다고 평가하고 있으니 우리 이 청취자 여러분들도 한국 증시가 경제의 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 해 주셨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박주언 : 그러게요. 지금 문자가 도착했는데 5846님이 주알못이라 박스 티는 들어봤어도 박스피는 못 들어봤는데 이야기 보따리 할아버지처럼 쉽게 풀어주셔서 재밌게 잘 들었다고 아 감사 문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4939님도 오늘 수원으로 출근하는 버스에서 듣고 있는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주식 얘기 흥미롭네요라고 해 주셨거든요. 재미나게 얘기를 풀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자, 오늘 우리 한국증시의 역사, 그리고 이번에 꿈의 숫자 5000p를 달성한 증시에 대한 해석을 정리해 봤습니다. 평론가님 감사합니다.
◇ 최요한 : 네, 감사합니다.
◆ 박주언 : 네, 지금까지 <시사돋보기> 최요한 시사평론가와 함께 얘기 나눠봤습니다.
최요한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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