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품 시알리스로 완성하는 전문적 활력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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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봉이랑선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6-01-28 21:3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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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품 시알리스로 완성하는 전문적 활력 회복
남성의 활력 저하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습니다. 몸의 에너지가 예전 같지 않고, 중요한 순간에 자신감이 떨어지는 경험은 어느 순간부터 점차 누적됩니다. 단순한 피로라고 여기고 넘어가기에는, 삶의 질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활력은 단지 체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관계의 만족도, 자존감, 그리고 사회적 자신감까지 연결되는 핵심 요소입니다.
이러한 고민의 해답으로 시알리스는 단순한 보조제가 아닌, 과학적으로 설계된 전문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시알리스는 발기부전 치료제 중 하나로, 주성분 타달라필Tadalafil의 안정성과 지속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임상 결과를 통해 효과가 입증된 제품입니다. 시알리스의 핵심은 자연스러운 회복입니다. 인위적인 자극이 아닌, 남성 본연의 기능을 부드럽고 강력하게 되살리는 작용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어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높은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정품 시알리스는 복용 후 약 30분에서 1시간 이내에 효과가 나타나며, 작용시간은 무려 36시간 이상 지속됩니다. 이는 한 번의 복용으로 여러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갑작스러운 분위기에도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게 해줍니다. 특히 데일리 복용이 가능한 2.5mg 또는 5mg 저용량 제형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시알리스를 편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매일 복용하면서 성적 긴장 없이 자연스럽고 건강한 반응을 유도해, 남성들에게 안정적인 자신감을 제공합니다.
또한, 시알리스는 단순히 발기부전 치료를 넘어서, 전립선비대증으로 인한 배뇨장애 증상을 완화하는 데에도 사용됩니다. 이중 작용 덕분에 중장년층 남성들이 겪는 대표적인 건강 문제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매우 실용적인 약물로 평가받습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임상 가이드라인에서도 시알리스는 두 증상을 함께 치료할 수 있는 약제로 널리 권장되고 있습니다.
시알리스의 효과는 수치로도 확인 가능합니다. 다양한 임상 시험에서 시알리스 복용자들은 발기력 개선, 삽입 성공률 증가, 성관계 만족도 향상 등에서 유의미한 개선을 경험했습니다. 특히 효과의 지속시간이 길다는 점은 남성뿐 아니라 파트너에게도 안정감을 주며, 관계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한 사용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알리스는 단순한 약이 아니라, 다시 대화를 시작하게 해준 도구였습니다. 파트너와의 대화, 스킨십, 감정 교류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 변화는 많은 부부에게 소중한 회복의 계기가 됩니다. 또한 전문가들은 시알리스가 남성의 정신적 안정감과 연결된다고 분석합니다. 심리적인 위축감이 줄어들고, 일상 속 자신감이 회복되며, 전반적인 삶의 활력이 높아지는 것이죠.
하지만 시알리스는 어디서나 구입해 복용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신뢰할 수 있는 경로에서 정품을 구매하고, 복용 전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건강 상태에 맞는 용법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혈압약이나 심혈관 관련 약물을 복용 중인 경우, 상호작용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복용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되거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알리스는 식사와 무관하게 복용할 수 있어 바쁜 일상 속에서도 활용하기 좋습니다. 고지방 식사 후에도 흡수에 큰 영향을 받지 않으며, 일정한 패턴으로 복용하면 일상에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는 시알리스가 단순한 처방약이 아닌,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건강 관리의 일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남성의 활력 회복은 단기적인 처치로 끝날 수 없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맞춤형 솔루션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알리스는 단순한 약이 아닌, 건강한 삶을 위한 전략적인 선택입니다. 다시 말해, 단순한 활력이 아닌 전문적인 회복을 원한다면, 시알리스는 그에 걸맞은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삶에서 활력이란 단순히 밤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자신감, 건강한 일상, 파트너와의 관계, 모든 것에 직결되는 중요한 축입니다. 그리고 그 축을 튼튼히 세우는 것은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시알리스는 그러한 변화를 뒷받침해주는 과학이자, 신뢰할 수 있는 건강 파트너입니다.
이제는 단순한 활력으로는 부족합니다. 전문적인 회복, 지속 가능한 변화, 과학적으로 검증된 효과. 바로 시알리스가 갖고 있는 본질입니다. 당신의 자신감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 지금 시알리스와 함께 시작해보십시오. 이 선택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삶의 질을 완전히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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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eastorygame.top
※ [주파수 36.5]는 문화체육부 기자들이 36.5도 생기 가득한 지역민의 삶에 주파수를 맞추고 들어보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오창성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월동에 있는 괴암김주석기념관 앞에서 기념관을 설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오창성(78)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은 괴암 김주석(1927~1993) 선생에게서 '자유상상화 기법 오션파라다이스다운로드 '을 물려받았다. 자유상상화는 형식이나 기법에 구애받지 않고 그리는 상상화를 뜻한다.
선생은 1992년 오 부이사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본인의 뜻을 이어줄 진실한 지도교사'라며 자료 등을 넘겼다. 당시 교사였던 오 부이사장은 4~5년간 학생들에게 이 자료를 연구하고 적용해 자유상상화 기법을 체계화했다. 1997년 한국미술교육학회에서 논문을 오리지널골드몽 발표했고, 2007년에는 세계미술교육학회(International Society for Education through Art·InSEA) 세계대회를 통해 자유상상화를 알렸다.
교직에서 퇴임한 오 부이사장은 2011년부터 학생·시민·작가 등이 참여한 '마당미술'을 전개해오고 있다. 자유상상화 기법을 활용한 국민운동으로, 화폭 너비만 50 황금성릴게임 0m가 넘는다. 참여 희망자는 화폭 속 자유롭게 표현된 선을 보고 연상되는 그림을 그리거나, 색을 넣는 등 떠오르는 대로 채워나가면 된다. 자유상상화 국민운동 전개는 선생의 바람이기도 했다.
오 부이사장과 선생은 어떻게 인연을 맺었을까. 그가 마당미술 등을 펼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김주석 선생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 오션파라다이스다운로드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김주석 탄신 1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2009년 열린 무학화가협회 '제31회 경상남도 농어촌학생 미술공모전' 시상식 모습. 오창성(앞줄 오른쪽)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이 시상하고 있다. /무학화가협 바다이야기게임장 회
2024년 열린 '무학화가협회 공개토론회' 모습. 오창성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이 발표하고 있다. /무학화가협회
무학화가회 사제 관계로 인연
"1970년대 중반에 무학화가회(현 무학화가협회)가 만들어졌거든. 내가 30대 초반이었을 땐데, 그때 나를 포함해 젊은 청년들이 '고문으로 모시자'고 해서 모신 초대 고문이 김주석 선생님이라."
1975년 9월 직장인 5명과 경남대학교 미술교육과 학생 4명 등 9명이 교류를 목적으로 만든 동호회가 무학일요화가회다. 1976년 10월 무학화가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그해 12월 마산 오양다방에서 창립전을 열었다. 1978년 무학화가회에 가입한 오 부이사장은 3~5대, 13대 회장을 지냈다.
"그때는 매달 한 번씩 야외로 그림을 그리러 나갔어. 그때 선생님이 같이 다녔단 말이지. 우리가 보기에는 선생님이 굉장히 하늘 같다고 생각했다고. 대가란 말이야. 우리는 30대 초짜잖아. 그래서 일부러 옆에 가서 따라 그리기도 하고, 가방도 들어주고, 뭐 다했지 내가. 우리는 하나부터 끝까지 다 물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잖아. 내가 그중에서 열성이 있어 보였는가 봐.(웃음) 내가 제일 잘 보였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김주석 선생님과 계속 교류하며 더 친해졌지."
선생은 애주가였다. 선생의 '술상무'가 오 부이사장이었다고 했다. 1982년 1월 5일 0시부터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됐는데, 그전까지 오 부이사장은 통금 시간에 맞춰 선생을 집에 모셔다드렸다.
무학화가회는 동호회 성격이 강했다. 가입자들은 한국미술협회 마산지부(마산미술협회)에 가입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하기도 했다. 탈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 부이사장은 지금도 몸담고 있다. 그는 "나는 죽을 때까지 의리를 지키겠다"고 밝혔다.
오창성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월동에 있는 괴암김주석기념관에서 자유상상화를 설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지난해 11월 마산 3.15아트홀 제2전시실에서 이 열렸다. 오창성(왼쪽 셋째)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 부이사장도 참여했다. /경남도민일보 DB
자유상상화 국민운동 전개
오 부이사장은 선생이 남긴 기록을 엮어 책 두 권을 냈다. 2021년 낸 <항일운동가 김주석 자유를 꿈꾸다>(도서출판 아미원)와 2022년 발간한 <항일 독립운동가 김주석 선생을 재조명하다>(도서출판 경남)다. 특히 첫 책에 자유상상화의 개념, 그리는 방법과 절차, 자유상상화 작품의 회화적 가치 등이 담겼다.
"선생님이 마지막에 돌아가시기 전에 '내 논문 다 줄 테니까 연구를 해봐라. 나는 지금 나이도 그렇고 할 만한 여건이 어렵다. 연구 한번 해봐라'고 말씀하신 거라. 그래, 내가 자료를 받아서 나름대로 연구해 논문을 쓰고 학술대회에서 발표도 했고 시연도 했고, 그 뒤에 세계미술교육자대회에서도 발표하고 시연하면서 그때부터 수십 명, 수천 명이 같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는 기라."
오 부이사장은 교직 퇴임을 앞둔 2010년 6월부터 11월까지 '마지막 수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창원 마산중앙초등학교 대강당에서 전교생과 학부모·미술 교육자 등 약 1000명이 참여해 자유상상화를 활용한 협동화 작업을 했다. 두루마리 화선지 약 130m를 채우는 과정이었다.
"1000명을 데리고 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한 것은, 미술 교육자로서 평생의 모든 노하우를 다 쏟아붓는 프로젝트를 해보겠다는 마음이었어. 그래서 자유상상화를 1000명을 데리고 한 거라. 이거는 아마 미술계에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해."
오 부이사장은 2023년부터는 '시민 참여 마당미술 열림전'을 이어오고 있다. 선생이 추구한 항일독립정신을 토대로 자유·평화·통일을 주제로 한 협동화 작업이다. 2010년부터 학생·시민·작가 등 약 2만 명이 참여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모든 사람이 이러한 정신을 함께 공유하게 되니 애국심이나 대동의식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월동에 있는 괴암김주석기념관.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내가 가는 곳은 화실이고, 사는 것은 예술로 살겠다'
오 부이사장은 현재 무학화가협회를 비롯해 경남한국화가협회·마산미술협회·경남선면예술가협회 등에 몸담고 있으며,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 부이사장뿐 아니라 창원시문화상수상자회 회장, 경상남도문화상수상자회 사무국장을 맡는 등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선생님이 그림도 그렸지만 메모광이라. 항상 스케치북을 가지고 댕겼어. 내가 그 정신을 그대로 받아가지고 나도 항상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녀.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내가 가는 곳 어디나 화실로 삼겠다고 생각한 이후로 식당이든 회의실이든 공연장이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기라."
오 부이사장의 좌우명은 '내가 가는 곳은 화실이고, 사는 것은 예술로 살겠다'다. 선생의 영향이 컸다. 선생은 '구상집'이라는 종합장에 화론, 예술 철학, 인생관, 문학, 작품 구상과 작업 메모, 일기, 미술교육 연구·지도론과 실천 수기 등을 남겼다. 오 부이사장은 "선생님이 메모광인데, 내내 그것만 보고 있었는데, 그거 안 하면 선생님 제자 아니다"며 웃었다.
그에게 김주석 정신은 무엇이며,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선생님은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시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셨기에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 어릴 때부터 야학에서 한글을 가르친 애민정신, 항일독립운동의 애국심, 교육자로서의 사명 의식,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 문화예술 창작열 등이 응축된 것이 김주석 선생의 정신이라. 그 정신이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본받아 행동으로 옮겨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 없어질 거야."
/류민기 기자
오창성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월동에 있는 괴암김주석기념관 앞에서 기념관을 설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오창성(78)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은 괴암 김주석(1927~1993) 선생에게서 '자유상상화 기법 오션파라다이스다운로드 '을 물려받았다. 자유상상화는 형식이나 기법에 구애받지 않고 그리는 상상화를 뜻한다.
선생은 1992년 오 부이사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본인의 뜻을 이어줄 진실한 지도교사'라며 자료 등을 넘겼다. 당시 교사였던 오 부이사장은 4~5년간 학생들에게 이 자료를 연구하고 적용해 자유상상화 기법을 체계화했다. 1997년 한국미술교육학회에서 논문을 오리지널골드몽 발표했고, 2007년에는 세계미술교육학회(International Society for Education through Art·InSEA) 세계대회를 통해 자유상상화를 알렸다.
교직에서 퇴임한 오 부이사장은 2011년부터 학생·시민·작가 등이 참여한 '마당미술'을 전개해오고 있다. 자유상상화 기법을 활용한 국민운동으로, 화폭 너비만 50 황금성릴게임 0m가 넘는다. 참여 희망자는 화폭 속 자유롭게 표현된 선을 보고 연상되는 그림을 그리거나, 색을 넣는 등 떠오르는 대로 채워나가면 된다. 자유상상화 국민운동 전개는 선생의 바람이기도 했다.
오 부이사장과 선생은 어떻게 인연을 맺었을까. 그가 마당미술 등을 펼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김주석 선생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 오션파라다이스다운로드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김주석 탄신 1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2009년 열린 무학화가협회 '제31회 경상남도 농어촌학생 미술공모전' 시상식 모습. 오창성(앞줄 오른쪽)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이 시상하고 있다. /무학화가협 바다이야기게임장 회
2024년 열린 '무학화가협회 공개토론회' 모습. 오창성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이 발표하고 있다. /무학화가협회
무학화가회 사제 관계로 인연
"1970년대 중반에 무학화가회(현 무학화가협회)가 만들어졌거든. 내가 30대 초반이었을 땐데, 그때 나를 포함해 젊은 청년들이 '고문으로 모시자'고 해서 모신 초대 고문이 김주석 선생님이라."
1975년 9월 직장인 5명과 경남대학교 미술교육과 학생 4명 등 9명이 교류를 목적으로 만든 동호회가 무학일요화가회다. 1976년 10월 무학화가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그해 12월 마산 오양다방에서 창립전을 열었다. 1978년 무학화가회에 가입한 오 부이사장은 3~5대, 13대 회장을 지냈다.
"그때는 매달 한 번씩 야외로 그림을 그리러 나갔어. 그때 선생님이 같이 다녔단 말이지. 우리가 보기에는 선생님이 굉장히 하늘 같다고 생각했다고. 대가란 말이야. 우리는 30대 초짜잖아. 그래서 일부러 옆에 가서 따라 그리기도 하고, 가방도 들어주고, 뭐 다했지 내가. 우리는 하나부터 끝까지 다 물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잖아. 내가 그중에서 열성이 있어 보였는가 봐.(웃음) 내가 제일 잘 보였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김주석 선생님과 계속 교류하며 더 친해졌지."
선생은 애주가였다. 선생의 '술상무'가 오 부이사장이었다고 했다. 1982년 1월 5일 0시부터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됐는데, 그전까지 오 부이사장은 통금 시간에 맞춰 선생을 집에 모셔다드렸다.
무학화가회는 동호회 성격이 강했다. 가입자들은 한국미술협회 마산지부(마산미술협회)에 가입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하기도 했다. 탈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 부이사장은 지금도 몸담고 있다. 그는 "나는 죽을 때까지 의리를 지키겠다"고 밝혔다.
오창성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월동에 있는 괴암김주석기념관에서 자유상상화를 설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지난해 11월 마산 3.15아트홀 제2전시실에서 이 열렸다. 오창성(왼쪽 셋째)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 부이사장도 참여했다. /경남도민일보 DB
자유상상화 국민운동 전개
오 부이사장은 선생이 남긴 기록을 엮어 책 두 권을 냈다. 2021년 낸 <항일운동가 김주석 자유를 꿈꾸다>(도서출판 아미원)와 2022년 발간한 <항일 독립운동가 김주석 선생을 재조명하다>(도서출판 경남)다. 특히 첫 책에 자유상상화의 개념, 그리는 방법과 절차, 자유상상화 작품의 회화적 가치 등이 담겼다.
"선생님이 마지막에 돌아가시기 전에 '내 논문 다 줄 테니까 연구를 해봐라. 나는 지금 나이도 그렇고 할 만한 여건이 어렵다. 연구 한번 해봐라'고 말씀하신 거라. 그래, 내가 자료를 받아서 나름대로 연구해 논문을 쓰고 학술대회에서 발표도 했고 시연도 했고, 그 뒤에 세계미술교육자대회에서도 발표하고 시연하면서 그때부터 수십 명, 수천 명이 같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는 기라."
오 부이사장은 교직 퇴임을 앞둔 2010년 6월부터 11월까지 '마지막 수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창원 마산중앙초등학교 대강당에서 전교생과 학부모·미술 교육자 등 약 1000명이 참여해 자유상상화를 활용한 협동화 작업을 했다. 두루마리 화선지 약 130m를 채우는 과정이었다.
"1000명을 데리고 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한 것은, 미술 교육자로서 평생의 모든 노하우를 다 쏟아붓는 프로젝트를 해보겠다는 마음이었어. 그래서 자유상상화를 1000명을 데리고 한 거라. 이거는 아마 미술계에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해."
오 부이사장은 2023년부터는 '시민 참여 마당미술 열림전'을 이어오고 있다. 선생이 추구한 항일독립정신을 토대로 자유·평화·통일을 주제로 한 협동화 작업이다. 2010년부터 학생·시민·작가 등 약 2만 명이 참여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모든 사람이 이러한 정신을 함께 공유하게 되니 애국심이나 대동의식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신월동에 있는 괴암김주석기념관.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내가 가는 곳은 화실이고, 사는 것은 예술로 살겠다'
오 부이사장은 현재 무학화가협회를 비롯해 경남한국화가협회·마산미술협회·경남선면예술가협회 등에 몸담고 있으며, 괴암김주석기념사업회 부이사장뿐 아니라 창원시문화상수상자회 회장, 경상남도문화상수상자회 사무국장을 맡는 등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선생님이 그림도 그렸지만 메모광이라. 항상 스케치북을 가지고 댕겼어. 내가 그 정신을 그대로 받아가지고 나도 항상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녀.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내가 가는 곳 어디나 화실로 삼겠다고 생각한 이후로 식당이든 회의실이든 공연장이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기라."
오 부이사장의 좌우명은 '내가 가는 곳은 화실이고, 사는 것은 예술로 살겠다'다. 선생의 영향이 컸다. 선생은 '구상집'이라는 종합장에 화론, 예술 철학, 인생관, 문학, 작품 구상과 작업 메모, 일기, 미술교육 연구·지도론과 실천 수기 등을 남겼다. 오 부이사장은 "선생님이 메모광인데, 내내 그것만 보고 있었는데, 그거 안 하면 선생님 제자 아니다"며 웃었다.
그에게 김주석 정신은 무엇이며,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다.
"선생님은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시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셨기에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 어릴 때부터 야학에서 한글을 가르친 애민정신, 항일독립운동의 애국심, 교육자로서의 사명 의식,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 문화예술 창작열 등이 응축된 것이 김주석 선생의 정신이라. 그 정신이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본받아 행동으로 옮겨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 없어질 거야."
/류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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