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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시 고부보건지소의 시간은 마을버스 배차표에 맞춰 흐른다. 보건소의 공식 개원 시간은 오전 9시. 하지만 보건소 문은 마을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는 오전 7시40분께에 열린다. 긴 배차간격을 고려한 보건소의 작은 배려다. 4월22일에도 보건소의 하루는 어김없이 일찍 시작됐다. 문은 보건소 안에서 열렸다. 보건소 안에서 잠긴 문을 연 사람은 고부보건지소 임경수 소장(68). 그는 현재 보건지소 건물 2층 옥탑방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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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가 다니는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샛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300년 넘은 느티나무 세 그루가 우뚝 서 있다. 그 옆에 자리 잡은 2층짜리 벽돌 건물이 바로 고부면 보건지소다. 4월22일 오전 8시25분, 굵은 빗줄기를 뚫고 첫 손님이 도착했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손님도 들어 국가장학재단 전환대출 왔다. “어깨가 아파가지고. 여기 의사 선생님이 용하다 해서 한번 와봤네.” “정읍 시내에 있는 병원에 가려면 시내버스 맞춰서 가야 하니까. 여기서 딱 한 번 치료받았더니 바로 나았죠.”


지난해 11월 명의가 보건소에 새로 부임했다는 소식이 마을에 돌았다. 소문은 고부면 인근 마을까지 퍼졌다. 일 대한민국 스위스 주일에 두세 명, 많아도 다섯 명 정도가 찾던 고부보건지소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4월22일에도 오전 9시가 되자 실내용 슬리퍼가 부족할 만큼 많은 인원이 대기 공간을 채웠다.


용하다고 소문난 그 의사는 응급의료계의 거목이라 불리던 임경수 소장이다.임 소장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인천텔레마케터 응급의학과에서 33년간 근무하면서 응급의료 체계를 구축한 베테랑 의사다.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 대한외상학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2022년에 아산의료원 산하 병원 중 하나인 정읍아산병원 병원장을 맡으면서 처음 정읍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정읍아산병원병원장으로 있을 때 뇌경색으로 침상에 누워 있 저소득가구 전세자금대출 는 아내를 돌보는 남자가 당뇨를 앓게 되어 아파도 집을 떠나지 못한다는 사연을 알게 되었다. 의료 취약 지역에 더 머물기로 마음을 먹었다. “봉사 한번 해볼까 하는 건방진 생각에 왔죠.” 임 소장은 임기제 공무원으로 정읍시와 계약을 맺어 이곳 고부보건지소로 왔다. 임 소장의 경우는 시니어 의사가 시와 계약을 맺어 보건소 의사로 일하게 된 최초 사례다.




보건지소 업무 시작 시간 전인 오전 8시30분께, 전날 정류장에서 만나 버스표를 대신 끊어준 임경수 고부보건지소장(오른쪽)에게 주민이 답례로 빵을 선물했다. 검은 비닐에 담긴 빵을 든 임 소장이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오전 9시가 되자 진료를 보러온 주민들로 고부보건지소의 대기 공간이 가득 찼다. ⓒ시사IN 이명익



임 소장의 진료는 진료실 밖에서부터 시작된다. 청력이 안 좋은 환자를 위해 진료실 밖으로 나와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른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 “지난번 약은 잘 드셨어요?” “담배는 잘 참았죠?” 환자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가면서 안부를 묻는다. 이런 임 소장의 친절함이 만병통치약 노릇을 했는지, 보건소 덕분에 병이 다 나았다고 환자들이 말한다. 그렇다고 하기에 임 소장이 사용하는 건 고작 고동색 청진기 하나뿐이다. “손 한번 잡아드리고, 스트레스 받으신 화풀이도 들어드리고 있어요.” 환자가 하고 싶은 말을 느긋하게 들어주는 것도 치료라는 듯 임 소장이 말했다.


시골 생활은 임 소장의 일상도 바꿨다. 검소하게 사는 삶이 몸에 배기 시작했다. 임 소장의 숙소는 보건지소 2층에 마련된 5평 남짓 옥탑방이다. 정읍아산병원에서 사용하던 ㄱ자 책상을 방 중앙에 가져다놓으니, 다른 것을 둘 공간이 부족했다. 침대 없이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잔다. 지난해 엄동설한을 이 옥탑방에서 보냈다. 지붕에 고드름이 맺히고, 낡은 창문 틈으로 바람이 술술 불어 들어왔다. 임 소장은 “희생정신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말했다. 서울로 돌아갈까 고민해본 적도 있다. 그랬던 임 소장의 마음을 붙잡은 건 이곳 사람들의 ‘잔정’이다.


4월22일 오전, 한 할머니가 검은 봉투를 손에 쥐고 보건소를 찾아왔다. 봉투에 낱개로 포장된 작은 팥빵이 들어 있었다. 전날 임 소장이 할머니 대신 내준 버스비 1000원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지난 6개월간 마을 사람들과 이런 잔정을 셀 수 없이 주고 또 받았다. 옥탑방에 들어오던 날, 임 소장과 정읍에서 알게 된 전정기씨(60)는 등유를 실어왔다. 또 다른 지인인 이재연씨(57)는 온수 매트를 들고 왔다. 또 누군가는 갓 뜯은 머위를, 쪽파를, 두릅을 가져다줬다. 임 소장은 언제 무엇을 받았는지 휴대전화 메모장에 기록해두었다. 잊지 않기 위해서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꺼내 봅니다.”




진료를 마친 주민과 인사를 나누는 임경수 고부보건지소장(왼쪽). ⓒ시사IN 이명익





이향선 간호사가 환자에게 처방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보건소에 ‘시니어 의사’ 필요한 이유

보건소는 지역사회의 건강을 보장하는 1차 의료기관이다. 초진과 예방접종을 제공하고 건강 교육을 진행한다. 시골에서는 버스를 타고 시내의 큰 병원으로 이동하기 어려워 잔병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작은 병이 큰 병으로 번지는 위험을 막아주는 1차 ‘의료 댐’ 구실을 보건소가 맡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전국적으로 공중보건의 수가 급감하면서 보건소의 의료 공백이 가중되고 있다. 임 소장 같은 ‘시니어 의사’가 보건소로 와주는 일이 절실한 이유다.


시니어 의사의 장점은 노련함과 친숙함이다. 임 소장은 자진해서 주민들의 주치의 역할도 맡고 있다. 주민들이 건강검진 결과지나 처방전을 들고 오면 무료로 해석을 해준다. 자주 오는 환자에게는 잔소리처럼 금연과 금주도 권한다. ‘흰머리 의사’가 젊은 의사보다 더 편하다고 말하는 환자들도 있다. 4월21일 오전 보건소로 진료를 보러 온 60대 주민 이승권씨는 “나이가 비슷하니 소통도 잘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업무 시간 전인 오전 8시40분경 임경수 고부보건지소장이 진료실에서 컴퓨터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임경수 소장이 고부보건지소 옥탑방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임 소장의 고부보건지소는 정읍시의 유연한 행정, 임 소장 개인의 결단, 그리고 지역의 공동체의식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사례다. 그러나 이는 임 소장 개인의 결단과 꾸준한 희생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도 안고 있다.


“주변에 오겠다는 의사가 많지만 그들을 당장 초대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게 임 소장의 생각이다. 임 소장은 “퇴직한 의사가 농촌에 정착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사학연금”이라고 설명한다. “33년 동안 대학병원 의사로 일해서 한 달에 약 450만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보건지소장(임기제 공무원)으로 오니 연금이 끊겼습니다.” 지금 공무원으로서 받고 있는 월급은 약 300만원. 서울과 정읍의 두 집 살림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고 임 소장은 말했다.


열악한 주거시설도 시니어 의사의 시골 정착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다. “고령 의사의 경우 척추나 다리가 안 좋은 경우가 있는데, 주거시설이 너무 열악하죠.” 정년을 넘긴 고령 의사에게 옥탑방 생활이 유인책이 될 수 없다. 지역에서 적절한 빈집을 활용한다면, 보건소가 귀촌 생활을 꿈꾸는 시니어 의사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임 소장은 제안했다.


임경수 소장이 고부보건지소에 온 지도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남은 임기는 약 1년 반. 이 이야기를 들은 환자들은 벌써부터 “임기를 연장해달라”고 임 소장에게 부탁하곤 한다. 사학연금 문제를 해결해주면 남아 있을 거라던 임 소장도 마음이 약해진 지 오래다. 정에 기대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미 정에 빠져버렸다. “정읍을 떠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더불어 산다는 말이 유치하게 들렸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전북 정읍시 고부면 고부보건지소에서 진료를 마친 한 동네 주민이 오토바이를 타기 전 환하게 웃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임경수 고부보건지소장이 진료 중인 가운데 보건소를 찾은 주민들이 키를 재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퇴근 후 지인들을 만나려고 버스로 이동 중인 임경수 고부보건지소장. ⓒ시사IN 이명익



 


 

정읍/글 문준영 수습기자·사진 이명익 기자 jun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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